이타적으로, 풍요롭게, 따뜻하게, 행복하게,

신승헌

PM

2023. 12. 27.

사람은 저마다 일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근원의 목적인 생계유지에서부터 자아실현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더불어 내 일이 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이들처럼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비슷한 나이에 IT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의 분야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금도 발로 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승헌

반갑습니다, 도언님. 비즈니스캔버스의 PM 신승헌이라고 합니다.


도언

네, 안녕하세요. 디스콰이엇을 만들어 가고 있는 권도언입니다.


승헌

먼저 도언님께서 어떻게 스타트업에 조인하게 되었는지,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기 전에 도언님의 이력을 보고 왔는데요, 도언님께서는 어떻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도언

근본적으로 내려가면 저의 성향 같은 것이 시발점인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틀에 사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 시간만 되면 공부 안 하고 퍼질러서 자고, 쉬는 시간만 되면 하고 싶은 거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대신 부모님이 그런 저에게 뭐라 하거나 다그치지 않으신 덕분에,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배웠던 것도 되게 많아요. 피아노도 한 5~6년 쳐봤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고, 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술도 한 1~2년 배워보고, 예체능에도 두루두루 관심이 있어서 축구부도 오랫동안 했어요. 기타도 치고, 심지어 제과제빵 자격증까지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지’ 찾고 싶어서 정말 다양한 분야를 많이 시도해 봤어요.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런던으로 출장을 가실 일이 있어서, 그리고 마침 제가 아스날이라는 축구팀을 너무 좋아해서, ‘나 무조건 따라가고 싶다’ 하고선 따라갔어요. 그것이 제 첫 해외 여행이었어요. 저에게는 그때 선진국에 대한 로망 혹은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할 거야’, ‘특히 유럽, 영국이면 더 행복하게 잘 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야’, ‘자아실현을 목표로 두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와 같은 기대감을 갖고 영국으로 갔죠. 거기서는 영국 사람들이 살듯이 여행했어요. 유명한 곳은 잘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느낀 건 홈리스도 되게 많고, 사람들도 엄청 불친절하고, 한국에서 등교하면서 느꼈던 그런 바이브와 다르지 않았어요. 피곤하고 칙칙한 그런 부분들이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목격하면서, ‘되게 별거 없구나’, ‘내가 상상하고 미디어에서 들었던 것과 되게 다르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때 저는 한창 ‘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지’, ‘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 않지’ 그런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인 줄 알았어요. 한국에만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영국에 가서 그런 모습을 한 번 보니까 이것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아실현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다가 떠오른 것이 사업이었어요. 내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기에 사업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교육이나 정치도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먼 길인 것 같았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확실했기 때문에요. 그것보다는 내가 빨리 해 볼 수 있고 더 확실한 것이 사업이었기에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승헌

그 고민에서 직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창업은 어떤 분야 혹은 테마에서부터 시작하셨나요?


도언

창업까지는 아니었고 방금 얘기한 제과제빵과 관련이 있어요. 그게 그 고민의 맥락에서 처음 시도했던 거예요. 그때 한창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빠져 있었는데, 이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자아실현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건 그 아래 단계의 퍼널이 해결되지 않은 거잖아요.


승헌

그래서 빵을?


도언

그렇죠.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음식의 카테고리가 빵이었어요. ‘많이 먹는다’ 하면 빵 아니면 쌀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빵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식량 문제를 큰 단위로 해결하면 일단 매슬로우의 2단계로 넘어가겠다’, 이런 이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갖고 그걸 배웠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유엔 식량 기구에서 발간한 리포트의 뉴스를 봤어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이 문제는 내가 식량을 만들 줄 알고 그런 공장을 갖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대개 정치 외교적인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결국 ‘이 방법으로는 좀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식량이었습니다.


승헌

신기하네요. 다음에 빵 한번 만들어주세요.


도언

지금도 시간이 나면 하는데, 혹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만들어 드릴게요.


승헌

너무 좋죠. 그래도 멋있네요. 되게 어린 나이였을 텐데, 빵을 만들 생각까지 하는 것도 매슬로우의 피라미드에서 쭉 내려가야만 할 수 있는 사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였나 보네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도언

지금도 그 문제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그 문제에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그다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IT 소프트웨어예요. 식량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산업 분야가 무엇일지를 고민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IT, 특히 소프트웨어가 눈에 많이 들어왔어요. 소프트웨어 공부를 하고 코딩도 배워보면서 어디가 소프트웨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지 그런 것도 되게 많이 보던 때가 고2쯤이었어요.

제가 언더독을 되게 좋아해요. 아스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기도 해요. 그런 팀들을 응원하는 걸 저는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저도 미국에 가고 싶진 않고 끌리지 않더라고요. 그 외의 제3세계 시장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중에 제일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게 어디인가 했을 때 동남아라고 생각이 들어서 대학을 동남아로 가보려 했어요.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으로요. 그래서 IELTS라는 시험이 있는데, 그때 그 시험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싱가포르 대학을 알아보니 그곳은 대부분 수능 점수를 많이 요구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중국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저는 학교생활이 정말 불성실한 학생이어서 성적표가 진짜 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성적을 고2 2학기에 뒤집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다른 기회를 찾다가 호주의 시드니 공과대학교를 알게 되었어요. 그곳에는 수능 점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IT 계열에 특화된 교육을 받았고 그쪽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전형이 있었어요. 더해서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대학의 교수로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너무 매력적이고 훌륭하다 느껴서 시드니 공대로의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곳을 타깃으로 고3 때 일반고에서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고, 전학 간 학교에서 1등을 했어요. 소프트웨어로 좋은 성적을 확보한 덕분에 시드니 공대에 지원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그렇게 호주로 대학을 가게 되었어요.


승헌

대단한데요.


도언

고등학교에서 느끼던 결핍 중 하나가 저와 같이 창업에 관심이 있고 미션이 동일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이 그걸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대학에 가면 나와 함께 창업할 수 있는 공동창업 멤버 혹은 창업에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상상했죠. 워즈니악의 이야기가 좋았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대학에서는 대다수가 창업에 관심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결핍이 더 커져서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직접 IT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후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 이력에 있는 J2KB 그리고 Junction를 그때 시작하게 됐어요. 한국에 와서 J2KB라는 메이커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해서 1년 반 정도 운영했고요. Junction 같은 경우에는 핀란드에 있는 유럽에서 제일 큰 해커톤 브랜드예요. 이들은 각 나라의 주요 도시마다 거점을 하나씩 만들어요. 제가 합류했던 건 JunctionX Seoul이었고, 거기에서 해커톤 운영을 2년 정도 했어요.

그런 IT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제가 느꼈던 결핍이 나와 비슷한 창업가, 메이커 같은 사람을 모으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니, 그 결핍을 J2KB와 Junction을 진행하면서 많이 해소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뭐 하러 대학교 돌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런 제 생각을 정리해서 여기저기 글5로 막 올렸는데 그때 디스콰이엇의 현솔님을 만나게 되면서 마침내 디스콰이엇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디스콰이엇은 현솔님과 제니님 두 분이 co-founder인데, 그 두 분이 ‘왜 디스콰이엇을 창업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되게 비슷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혹은 남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그런 이타적인 메이커들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이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고 사회가 훨씬 살 만한 곳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고 저도 많이 공감했죠. 더불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저 또한 그다음으로 느꼈던 문제였고, 두 가지 문제가 모두 저와 align 되다 보니 디스콰이엇도 함께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전역 이후에 곧바로 대학교를 자퇴했고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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